항해지도 리뷰

스페인 뿐 아니라 유럽 서점가에‘지적 스릴러’ 신드롬을 일으키며 10여 년 동안 베스트셀러 작가로 명성과 대중성을 인정받은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그는 종군 기자로 다년간 활동했으며, 청소년 시절부터 뒤마와 스탕달, 허먼 멜빌 등 수많은 작가를 스승으로 삼으며 독서에 몰두한 괴력의 작가로 국내에서도『뒤마클럽』과『플랑드르 거장의 그림』으로 지적 충만감과 마술적 재미를 선사하며 마니아층을 확보했다.

시공간을 넘나들며 고서의 비밀에 얽힌 살인사건의 미스터리를 추적하는『뒤마클럽』은알렉상드르 뒤마의 텍스트를 절묘하게 직조한 소설로, 에코의 소설보다 대중적이면서도 그 못지 않은 인문학적 지식과 상상력이 발휘된 소설로 평가받았다.

특히 작가만의 독특한 창작 문법은 스페인뿐 아니라 유럽 독자들까지 매료시켜 대중문학의 힘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소설가이자 번역가인 이윤기 씨는‘문학 이론과 예술적 측면에 대해 관심이 없고, 그것은 나의 소관이 아니다.’라고 거침없이 말하는 레베르테 소설이 지닌‘밖을 향한 문학의 힘’을 두고 국내 문학계의 위기와 체질개선에 관련한 의미심장한 화두를 던지기도 했다.

『항해지도』는 18세기 스페인 카를로스 3세 통치기, 예수회가 계몽주의에 반발했다는 이유로 추방당할 위기에 처했던 역사적 사실에 주목했다. 이 소설은 그러한 역사적 단초에 스페인 예수회 수뇌부가 왕과 각료들을 매수할 목적으로 에메랄드를 실은 데이 글로리아 호와 함께 쿠바에서 오던 중 의문의 해적선에 의해 침몰되었다는 상상력을 가미한 것으로, 그 보물선을 추적하는 인물들을 둘러싼 해양 스릴러이다.

레베르테는 자신의 고향인 카르타헤나를 배경삼아 육지를 떠도는 무기력한 선원이자 숙명주의자인 코이와 그를 유혹하여‘악마의 무지개’라 일컫는 에메랄드를 찾고자 하는 해양 박물관 큐레이터 탕헤르를 주인공으로, 역사의 증언이자 보고(寶庫)인 바다의 신비와 인간 본성의 수수께끼를 밝히기 위한 욕망의 항해에 나섰다.

심오하고 복잡다단한 삶과 사건들을 완벽하게 융합하고, 항해에 대한 내밀하고 철학적인 생각을 작가의 모험심과 접목한『항해지도』는 기존의 해양 문학에 모험과 미스터리 요소를 강조하여 장르적 특성을 변형시켰다는 호평을 받았다.

역사적 사실과 픽션을 씨줄과 날줄 삼아 절묘한 얼개를 이룬 이 소설은 추리와 모험 소설의 기법, 주조를 반영한 대중적인 특성과 방대한 독서를 바탕으로 한 유럽의 역사, 문화, 예술에 대한 현란한 지적 탐험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각종 역사 자료와 지도학, 선박, 해양 고고학 등의 자료를 면밀히 조사한 뒤 쓰여진 이 소설에는 멜빌에서 스티븐슨과 콘래드, 호머에서 패트릭 오브라이언에 이르기까지 삶의 완벽한 메타포인 바다에 대한 철학을 담은 해양문학의 고전이 텍스트 곳곳에서 숨쉬고 있으며, 찰리 파커의 재즈 음악과 그림, 영화 등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독자들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고 있다.

아직도 모험이 가능하다는 생각으로 역사를 재해석했다는 레베르테는『항해지도』를 통해‘수많은 것을 알지만 더 이상 꿈꾸려 하지 않는’현대인들에게 꿈과 모험의 항해를 떠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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