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녀를 사랑했네 리뷰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 리뷰이다.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져 집을 나간 남편 때문에 슬픔을 주체하지 못하는 클로에는 시아버지 피에르의 권유로 시골 별장에 내려가 며칠을 지낸다.

함께 있으면서도 언제나 ‘가족의 짓거리’ 안에는 들어와 있지 않은 것같은 시아버지 피에르는 평생 자신을 무엇인가에 놓아본 적 없는 그저 무뚝뚝하고 성실한 남자의 전형이다. 클로에는 그런 시아버지의 갑작스런 호의가 달갑지 않다. 그저 아들에 대한 일말의 책임감에서 우러나온 체면치레 정도로 보일 뿐.

소설의 첫머리는 계속 무언가로 삐걱거린다. 잔뜩 독이 올라 있는 며느리에게 계속 대화를 시도하는 시아버지 피에르, ‘얇은 종이에 아주 가는 펜으로 글을 쓰고 싶다’는 이 서른 두살의 세련된 프랑스 작가의 글을 ‘깜냥’이니 ‘뻘때추니’ 같은 순우리말로 번역한 문투도 눈에 거슬리고, 문체는 왠지 모르게 호흡이 거칠다.

“단 한번이라도 누가 어버님 뜻을 거역한 적이 있던가요? 아버님이 그런 걸 아실 리가 없죠..” 무슨 연극 독백처럼 비아냥거리듯 퍼부어대는 클로에의 공격에 어쩔 줄 몰라하는 피에르. 그리고 그녀의 악다구니가 극에 달하는 순간, 그녀는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고… 소설은 이제부터 두런두런 본론으로 나아갈 채비를 한다.

평생 한번도 ‘정도’에서 벗어나본 적 없을 것 같던 시아버지가 사랑했다던 옛 여자. 그의 때늦은 중년을 온통 흔들어 ‘모든 것을 버려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 여자. 그리고 그녀를 사랑했지만 자신을 대면할 용기가 없어 결국 가정을 지켰던 시아버지의 이야기를 풀어 놓으며.

“우리는 언제나 남아 있는 사람들의 슬픔에 대해서만 말하지. 하지만 떠나는 사람들의 괴로움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 있니? … 어느 날 아침 거울을 들여다보며, ‘나에게 잘못을 저지를 권리가 있을까? 하고 또박또박한 말투로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사람들은 용감한 사람들이야.”

다른 여타의 소설처럼 이 소설도 ‘불륜 혹은 로맨스’에 대한 명쾌한 결론을 내리고 있지는 않다. 일상과 열정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던 피에르는 결국 아무 것도 적극적으로 선택하지 못하고, 시아버지의 여자는 스스로 상처를 내고 돌아선다.

남편의 외도를 눈치챘으나, 새로 산 멋진 집과 지금까지 ‘부부’라는 이름으로 함께 물려 있던 인간 관계, 익숙한 상점들의 거리를 포기할 용기가 없던 아내는 그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피에르의 서툰 입을 빌어 내리는 작가의 마지막 변은 짐짓 ‘떠나는 자에게’ 손을 들어 주는 듯하다.

아주 오래 전에 있었던 일이야. 어느 날, 딸애를 데리고 빵집에 갔어. 빵집엔 사람들이 많았지. 바게트를 사고 빵집 문을 나서는데, 딸아이가 바게트 꽁다리를 떼어 달라고 했지. 갓 구운 바게트의 고소한 꽁다리를 먹고 싶었던 모양이야. 나는 거절했어. “지금은 안돼, 나중에 식사할 때 줄게.” 그리고 집에 돌아와 식탁에 가족 모두가 둘러앉았을 때, 나는 딸아이에게 말했지. 약속했던대로 꽁다리를 잘라주며, “너 아까 이거 먹고 싶다고 했지?” 하지만 아이는 냅킨을 펼치며 이렇게 대답했어. “하지만, 이젠 먹고 싶지 않아요.”

‘책임과 영원’, ‘감정과 순간’에 관한 사랑의 두가지 측면을 꽤 적극적으로 논하고 있는 소설이다. 사랑에 영원이라니… 책임과 약속의 언어를 빼고 누가 사랑에 영원을 부여할 수 있으리. 하지만 마찬가지로 감정에 충실하지 않는 당신, 사랑에 빠질 수 없으리. 조금 서걱거리긴 하지만, 선택의 여러 상황에 대해 다양한 층위를 열어놓고 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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