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슬란 전기2 리뷰이다. <아루스란 전기>의 작가인 다나카 요시키를 ‘본격적’으로 만난 것은, <창룡전> 때였다. 그 전에도 <은하영웅전설>의 작가로서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막상 읽어보기는 <창룡전>이 처음이었다.
워낙 일본 판타지나 추리물 등을 좋아하는지라, 아무런 선입관 없이 문고판으로 나온 <창룡전>을 구해 읽었다. 순정만화 스타일로 그려진 표지는 마음에 안들었지만, 신나게 질주하는 이야기와 문체 그리고 재기어린 독설은 아주 유쾌하게 다음 권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가속도가 붙더니만 순식간에 10권을 넘어섰다.
<창룡전>은 사해용왕이 현대 일본에 환생하여, 갖가지 모험을 벌이는 이야기다. 따지고 보면 판타지는 이렇게 한 문장으로 축약할 수 있는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아루스란 전기>는 뺏긴 나라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루스란의 영웅담이다. 당연한 일이지. 판타지는 이야기 자체의 독창성보다는, 이미 존재하는 공식과 인물형을 얼마나 탁월하게 교직하여 새롭게 보이는가에 달려있다.
발상 자체가 아무리 신선해도 기존의 공식을 외면하고 ‘판타지’를 구성하기란 아주 어렵다. 한 권 정도라면 몰라도, 적어도 7, 8권정도 이어지는 장편이라면 더욱 그렇다. 어쨌건 이렇게 단순하면서도 익숙한 이야기는 읽는 사람에게 편안한 느낌을 준다. 여유롭게 읽어나가다가, 작가가 마련한 함정에 풀썩 떨어지거나 반전에 뒤통수를 맞으면 비로소 그 작품에 감탄하게 된다.
1부 7권 중에서 3권이 먼저 나온 <아루스란 전기>도 아주 익숙한 이야기다. 아버지인 안드라고라스가 전쟁에서 패배하고, 수도를 빼앗긴 파르스의 왕자 아루스란이 수도회복을 위해 주변의 인물들을 모으고 힘을 길러간다. 무협지의 구성과도 흡사하다.
특히 ‘출생비화’는 무협지나 판타지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다. 이야기를 재미있게 끌어가는 방법은 간단하다. 처음에는 다양한 인물을 등장시키고, 역시 다양한 적들과 대결을 벌인다. 약간의 암시는 주지만, 여기까지는 그저 화려한 각개전투의 위용만을 과시한다. 하지만 점차 균열이 보인다. 난데없이 등장한 적은 죽어가면서 혹은 도망치면서 수수께끼 같은 말을 던진다.
이제부터는 단지 하나의 전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와 적의 진짜 음모가 무엇인지를 밝히는 것이 더욱 중요해진다. 이야기의 스케일은 점점 커지고, 주인공과 직접적인 관계를 가진 인물들이 등장하면서 때로 선악이 뒤집히는 복잡한 상황까지 전개된다. 만화로 나온 <공작왕>이 이런 전개방식을 그대로 따른다.
처음에는 약간 멍청하던 공작왕이, 사실은 세계를 파멸시키는 ‘공작’의 운명을 타고났지만 반대편에서 인간을 위해 싸운다는 것을 알게된다. 그 후 자신의 쌍둥이를 만나고, 세계를 파멸시키려는 집단과 처절한 전투를 벌인다. <창룡전>도 비슷한 전개를 보인다. 이 공식은 가장 쉽게, 독자를 빨아들이는 방법이다. 처음부터 거창하게 나가면, 독자는 지루함을 느끼기 십상이다.
처음에는 액션을 보여주다가, 주인공에게 어느 정도 애착을 갖게 된 시점에서 이야기를 펼치는 거다. 만약 애착을 안가지면 어떻게 하냐고? 간단하다. 그대로 소설이나 만화를 끝내는 거다. 어차피 인기도 없을 테니까. 일본에서 성공하는 만화나 판타지소설 등은 대개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이런 ‘쓸모없는’ 이야기를 만드는 이유는 간단하다. 재미있으라고 머리를 굴려가며 복잡한 상황을 만들어가고, 매력적인 인물을 창조해낸다. <반지전쟁>의 J.R. 톨킨은 거의 평생을 걸려가며 <반지전쟁>의 모태가 되는 세계와 인종들을 만들어냈다.
세계지도, 국가들, 인종의 특성과 그들의 지난한 역사를 몽땅 머리 속에서 만들어낸 것이다. 북구와 유럽의 신화와 전설, 민담 그리고 중세의 기사 이야기 등을 참조하여 ‘세계’를 창조해낸 것이다. 사이버펑크식으로 보자면, 어쩌면 우리의 세계도 그런 ‘창조물’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여튼 다나카 요시키는 그런 류의 ‘쓸모없는 이야기를 만드는데 정열을 쏟는 사람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나도 그렇다. 그런 쓸모없는 이야기의 효용이 단지 ’재미‘ 뿐이라고 해도, 그것만으로 나는 경애심을 느낀다. 왜? 재미있으니까. 단지 2시간일지라도 보는 동안 확실한 재미와 쾌감, 때로 감동까지 준다면 나는 그것이 최고의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예술도 좋지만, 예술만 감상하며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다나카 요시키의 <아루스란 전기>에 열광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루스란 전기>는 좀 ‘정통적’인 냄새가 난다. 삼국지에 무협지의 스타일을 접붙여 만든 정통 ‘판타지’라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다나카 요시키만의 사회, 정치 풍자는 여전하지만 그래도 <창룡전>의 현실적 통쾌함보다는 톡 쏘는 맛이 약간 덜하다. 하지만 <아루스란 전기>는 ‘판타지’의 입문 격으로는 너무나 딱맞는 소설이다.
흔히 나이든 사람들이 판타지는 너무 황당해서 읽을 수 없다고 말한다. <아루스란 전기>는 파르스와 루시타니아 등의 가상의 국가를 무대로 펼쳐지고 마법이나 요괴 등도 등장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충실한 ‘역사소설’의 구성을 빌려오고 있다. 파르스는 페르시아를 토대로 재구성한 제국이고, 루시타니아는 십자군이나 잉카제국을 침략한 스페인군을 떠올리며 만든 나라이기 때문에 소설 전체에 ‘현실적’인 함의가 곳곳에 널려있다.
<아루스란 전기>의 출판사는 그런 점을 고려해, 중고생을 대상으로 <창룡전>을 문고판에 만화같은 표지를 내세운 것에 비해 <아루스란 전기>는 보통 판형에 약간 중후해 보이는 표지로 일반 독자에게 어필하도록 만들었다. ‘판타지’가 약간 부담스러웠던 사람들이 한번 도전해볼만한 책이 바로 <아루스란 전기>다. 아마 읽고나면 당장 <창룡전>을 읽어야하지 않을까. 다나카 요시키의 소설은 아주 강도 높은 중독성을 갖고 있으니까.